결카이브 🗂️

세상 모든 것은 순수 에너지로 만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피곤하다

변성하 2024. 3. 2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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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상히읗 갤러리에서 다음 달 14일까지 열린다. 독특한 캔버스 형태와 강렬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콜라주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이를 표출하는 냉소와 자조, 실존적 대응 기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예언 감상 👀

Tragedy is so silly

비극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눈물은 끝없이 우스워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낙관, 긍정의 과잉, 희극적 환상. 모든 것이 비대해지거나 소멸해 간다. 캔버스의 ‘비극은 어리석다'라는 말은 마치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뇌까리는 냉소적 선고 같다. 화자는 사실 누구보다 비극의 무게와 깊이를 안다. 동시에 비극이 사회에서 축소되고 희화화되고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음 또한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공허한 돌림노래만 되짚을 뿐이다. 비극은 어리석다고. 이것이 작가가 이야기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다크 유머'가 아닐까?

"이것이 새로운 세대의 모럴이다. 대화를 얻기 위해서 독백(단절)을 배우고, 화해를 위해서 별리를 하는 것, 이 역설적인 긍정이 오늘날 젊음들이 지니고 있는 슬기다. 어떻게 헤어지지 않고 화해할 수 있으며, 어떻게 독백을 모르고 대화할 수 있는가?
이 삶의 화해는 옛날 같은 삶의 순응이 아니다.

- 이어링, <젊음이여 어디로 가는가>


내가 생각하는 결말이다.
끝없이 싸우는 것. 얻기 위해 잃고, 잃기 위해 얻는 것.
지금의 현실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자조 뒤에 승리의 확신을 갖는 것.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는지 생각하는 힘. 그 숨겨진 저력 안에 젊음이 있고 비극이 있고 눈물이 있다.


성하의 코멘트 👥
비극, 내게 쏟아지는 불운 덩어리는 극심한 고통을 제공하지만 결국엔 실소를 자아낸다. 너무 가혹해서 터져 나오는 아이러니한 웃음, 감당이 불가능하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한 후의 패배감. 죽음이 갑자기 내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걸 느낀다.
작품에는 높은 하늘과, 하늘만큼 높은 야자수가 있다. 그걸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각도가 나로 하여금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내 몸에 비극이 점점 퍼지면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없는 평화를 생각한다. 작품의 회화와 같은 평화로움을.



I‘ll meet you here

캔버스 측면까지 침범한 글자. 덕지덕지 붙어 얇은 마띠에르를 형성한 화면. 글귀와 이미지의 조합에서 오는 미묘한 공허감. 함께 있어 더욱 불안정한 아우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나약한 얼굴을 비출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둘러싼 모든 회화적 테크닉이 감동스럽다.





성하 감상 👀

It’s okay to be fragile sometimes

세상은 단단함을 요구한다. 쉽게 깨지지 않는 단단함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요소임에 동의하는 바이다. 이때까지 쉽게 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어떤 열정, 광기, 직진본능, 추진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맞선다. 그 페이스에서 무너지면 안 되고, 사실을 말하자면 무너질 시간도 없다. 작품 속의 텍스트가 이 시대의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적당히 때를 봐서 가끔씩만 무너지세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뿐이다. 연약한 이들에게 세상은 너무도 냉소적이다. 혹독하다.


예언의 코멘트 👥
연약함은 내가 쉽사리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나를 휘젓고 잠식하는 것. 그러나 비정한 사회는 깨지기 쉬운 연약함조차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성공 신화를 만들며 상품화한다. 성하가 말했듯 이건 일종의 광기다. 우리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마지막 결승선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마라톤이 아니라 그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러닝머신 위다.




But you’re still coming into work right?

완전한 쉼은 언제 가능할까? 아무 걱정, 불안 없이 마음 놓고 쉬는 때는 이제 한동안 없을 거란 걸 안다. 뭐 그런 것에 대한 기대는 이제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작품을 보면서는 수험생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매일을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쉼을 포기했었다. 쉰다 한들 쉴 수가 없었으니까 포기는 마땅한 선택이었을 테다.  
휴양지 같은 배경에 쓰인 문구는 쉼의 순간에만 간절히 잊고 싶은 사실을 괜히 상기시킨다. 또 머릿속에서 둥둥 부유하고 마는 짜증과 불안들 …




총평 🤔

예언 : 총 10개의 작품이 걸려 있어 서운을 읽고 작품을 보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짧았지만 지하에 있는 갤러리의 검은 문이, 정갈한 디스플레이가, 덧대어 만든듯한 콘크리트 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전시 제목이 좋다. 나는 피곤한 사회를 어찌 사랑하게 될까. 이 소란함을 무슨 모양으로 포옹하게 될까.

성하 : 작품 10개만이 전시되어 있는 구성으로 짧고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최근 호흡이 긴 전시 위주로 보다가 간만에 한 호흡에 볼 수 있는 전시를 봐서 깔끔하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던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은 순수 에너지로 만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피곤하다’는 제목과 작품이 꼭 알맞다. 블랙유머를 던지는 자들 특유의 피곤하고 시니컬한 분위기가 전시 전체에서 느껴진다. 꽤 재미있다고 생각한 전시였다. 갤러리가 위치한 동네(해방촌)의 분위기와 전시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어울린다. 이와 같은 작품을 추구하는 갤러리라면, 위치 선정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sanheeut

세상 모든 것은 순수 에너지로 만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피곤하다
2024. 03. 15. – 04. 14.
상히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