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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부터 1970년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전개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고자 마련되었다. (...) 추상은 외부 세계의 모습이나 사회적 현실과 무관한 미술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한 시대의 산물이다. 기하학적 추상 역시 그것이 만들어진 당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통해 당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되돌아보는 흥미로운 탐색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 전시 서문 발췌
예언 🟥

순간적으로 가로등의 노란빛과 어둑한 하늘이 연상되면서 마치 하루의 일과를 재빨리(그러나 완벽하게) 해치운 후 늦은 저녁에 떠나는 여행 특유의 공기가 다가왔다. 나는 밤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어둑한 밤을 가로지른 고요한 시작은 되려 은밀해서 더 큰 출발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산뜻한 밤공기를 폐부에 꽂아 넣을 때의 청량함도 더해져서.
변영원 작가의 <서울역 부근>에서 (그 어떤 역경
이나 불안과 연합하지 않고 오직) 경쾌한 시작을 느꼈고, 이는 작가가 속한 신조형파의 정신적 이념을 상기시켰다.
‘우리들은 어제의 발견이 오늘의 장물(藏物)이 된다면 내일 또 하나의 진실을 창조할 것을 생각한다.’
- 신조형파의 1957년 6월 이념 선언 중 일부 발췌
오늘의 발견이 내일의 구태가 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창조할 수 있는 힘은 경쾌한 발걸음에서 시작한다. 무한 긍정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진짜 긍정을 찾아야 한다. 진짜 긍정은 철저한 좌절의 밤과 동이 트는 새벽 그 언저리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성하의 코멘트 📍
크고 복잡한 서울역을 쉽게 떠올려 본다. 어릴 적부터 혼자 서울에 자주 올라왔었다. 돈이 없으니 무궁화호를 타고, 약 4시간 언저리를 달려서 도착한 서울의 첫인상이 서울역이다. 꿈만 같던 나의 서울은 언제 이렇게 익숙해져 버렸을까. 다시 처음을 회상한다.
기차에서 내려 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 가방 끈을 꼭 쥐고 / ‘긴장되면 숨을 크게 세 번 쉬어 !’ 엄마의 조언을 떠올리며 찬 공기를 속 깊이 집어넣는다.
씩씩한 걸음으로 서울역을 나서본다. 후 -

그릇은 물을 품을 수 없다. 자신의 크기만큼의 물만 담고서 세상 모든 물을 담았다 착각할 뿐이다. 그릇의 세계로는 물의 거대함을 상상할 수 없고 사람의 학문으로는 산을 품을 수 없다.
유영국 작가의 그림 속에서의 산은 언제나 나의 가슴 안에 ‘존재한다’. [이해한다/품는다/정복한다] 등의 인간의 언어로는 포획할 수 없다. 산은 언제나 총기 있게, 그저 존재한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영원히 담을 수 없고 닿으면 볼 수 없는 산의 증인이 될 뿐이다.

동시성은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를 동시적으로 한 화면에 담아낸다는 의미이다.
세계는 항상 동시적이다.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는 언제나 공존하기 때문에 영원히 혼란스럽고 그러므로 영원히 성스럽다. 그렇기에 서승원 작가의 <동시성>이 열어주는 세계는 최선을 다해 외부와 연결하며 시대를 넘나드는 것처럼 보인다. 육면체 각각의 면들의 얇은 표피를 하나씩 떼어낸 듯한 섬세함과 나긋한 색채에서는 초월성에 깃든 힘이 느껴진다.
성하 🟧

출판일로부터 약 100년이 흐른 현재에 보아도 디자인이 세련되었다. ‘DANSUNG WEEKLY’의 폰트와 글의 배치, 색조합은 20세기 초반에 나온 디자인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멋지다.
영화 주보가 만들어진 1920-30년대에도 이런 기하학 패턴이 대중들에게 환영받았을지 궁금해진다. 기하학적 추상은 클래식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순간, 고전은 영원하다.
예언의 코멘트 📍
종이에 서려 있는 낭만을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영원히 보존되는 디지털 클라우드는 햇빛과 공기에 민감한 종이를 이길 수 없다. 바스러지고 누래지는 종이 안에는 엄청난 밀도의 낭만이 담겨 있으며, 이는 영원히 데이터로 변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디 종이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때가 있다. 오만가지의 단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쁜 숨을 들이키고 내쉬며 이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일이다.
그림 속의 어둡고 칙칙한 색감, 경계가 뚜렷한 기하적 표현은 마치 그런 순간을 시각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눈으로 보는 나의 환상, 환각은 여전히 이상하고 싫은데 반갑기도 하다. 너는 내 삶의 일부이니까. 그냥 내가 업고 걸으면 되는 짐이니까.
작품으로부터 묘한 애증을 느낀다. 첫인상에 표정을 일그렸다가 씨익 웃어버렸다. 내가 졌다.

자료 화면으로만 보던 핵 시리즈를 실제로는 처음 관람했는데, 작품 앞에서 나와 예언은 감탄만 연발했다. 금속 파이프는 바로 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반짝였다. 당시 기하학적 추상 작가들의 작업 방식이 경이로워진다. 거의 득도의 수준이 아닐까? 숭고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총평 🤔
예언 :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연결성 있게 본 전시였다. 다만 전시장에 들어갈 때부터 엄청난 공사 소음이 있었다. 다른 관람객의 항의로 관람 초반에 공사가 중단됐지만 항의 한 번으로 중단할 수 있는 공사를 전시 시간에 하고 있었다는 점이 너무나 큰 실책이었다. 드릴 소리에 계속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맴도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아마 다시는 겪지 못할 황당한 경험일 텐데 평생에 한 번으로 족하다. 그 외에는 다양하고 힘 있는 작품들을 밀도 있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성하 :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한 번씩은 이렇게 시대순으로 구성된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머릿속을 환기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추상미술은 너무 어렵고 매력이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전시장에 발을 디디기 전부터 예언에게 “나 기하 추상 좀 힘든데..”라며 중얼댔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감상한 것 같다. 정갈할 수도, 정갈하게 지저분할 수도 있는 그런 기하학적 추상의 매력을 확인한다.
전시의 호흡이 기니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볼 것을 추천한다. 💪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3. 11. 16. – 2024.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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