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카이브 🗂️

올해의 작가상 2023

변성하 2023. 12. 4. 02:29

올해의 작가상이란? 🏆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요 연례 전시이자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수상제도이다. 전도유망한 주요 중견작가들의 전시와 수상,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3 🏅

올해의 작가상 2023 작가 4인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왼쪽부터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2023년 선정 작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들며 변화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과 답을 던지며 동시다발적인 평행우주를 만들어낸다.


🤔❓
올해의 작가상 2023의 물음

- 무엇이 인간과 비인간, 이웃과 타자,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도록 하는 바탕이 되는가? 그 구분은 가능한 것인가?

- 현대의 우리를 인간으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근대의 제도와 시스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 배타와 구분, 규율적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쌓아온 인간의 역사는 과연 인간이라는 종족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작가별 감상 공유💬

️ 제2 전시실 - 갈라포라스-김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이클 C. 록펠러 동의 1982-2021년 잔해

예언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 철거 기간 동안 수집한 먼지와 잔해를 모아 정육면체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작품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서 다시 예술이 탄생하는 순환을 통해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신호 예보

이와 비슷한 작품으로 <신호 예보>가 있다. 미술관의 습기를 천 위로 흘려보내면 검은 천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닥에 일정한 모양을 만든다. 전시 장소, 전시 기간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작품을 둘러싼 환경 중 습기가 또 다른 작품을 만들게 된다. 결국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흰 벽 프레임 밖 대상에 관해, 인간이 규정해 놓은 기준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매각 절차보다 화장을 통해 박물관을 떠나는 것이 더 쉽다

2018년 9월, 브라질 국립 박물관의 화재로 상당수의 유물이 소실되었다. 소실된 유물 중 <루치아>라는 여성 유해를 박물관 측에선 DNA를 통해 복원하고자 했으나 갈라 포라스-김은 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달라 주장한다.

우연찮은 화재를 그녀의 시신 화장으로 생각하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통해 박물관을 떠나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염원을 담아 재를 묻힌 휴지로 표현했다. 그동안 우리는 전시 작품을 관음증 환자처럼 탐하고만 있었는지 모른다. 미술관 제도로 편입되어 관람당하는 혹은 아무 검열 없이 유희하는 그 아득한 거리를 가늠해 본다.


마스타바 풍경

성하 : 마스터바는 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으로, 선왕조시대 말기부터 고왕국시대 전반에 걸쳐 성행하고, 또한 후세까지 채용된 극히 일반적인 개인묘의 형식이다.

풍경이라 하여 살아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내려다본 마스터바를 상상했는데, 막상 그림의 전경은 검은 암흑뿐이었다. 죽은 자의 입장에서 마스터바 풍경을 묘사한 것에서 작가의 천재성을 본다. 망자의 시선을 예술에 다시 등장시키고, 그 예술품의 이름을 ‘마스터바’라는 고대유물의 이름으로 지은 것은, 고대를 현대에 다시 복기시킴으로써 그것을 기억하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제2 전시실 - 전소정 🧬

예언 :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근대식 백화점에서 모조 근대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탈주하고자 한 이상의 시도를 담은 시라고 하는데, 시가 도통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 시는 도시의 반짝거림 속 퇴색되어 가는 개인의 존재를 기괴하고 쓸쓸하게 표현했을 것이다.

이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소정의 작품 자체로 환각적이다. 철골 구조와 반짝이는 빛, 정육점의 고기 부위처럼 전시된 <무릎> <심장> <눈> <얼굴>. 개체가 도살되고 장기는 구겨진다. 전시되면 역겨워지는 것들이 있다. 백화점의 쇼윈도, 미술관의 화이트큐브, 나의 장기. 이들 중 어떤 것이 미적인지, 역한지, 혹은 역하지만 눈물 나게 아름다운지 우리는 구분할 수 있을까?

전시 행위의 근본적인 당위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결국 이상이 말하는 모조 근대는 가짜라는 뜻이다. 내일의 인간은 더욱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허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Syncope

syncope는 당김음, 어중음탈락, 실신 상태를 뜻하는데, 모두 이탈적 성격을 가진다. 전소정은 데이터, 소리, 언어를 가지고, 경계를 넘나들거나 초월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계의 것들은 모두 자신만의 시간과 속도로 이야기한다. 모두 알아들을 수 없어도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성하

전소정은 끊임없이 동시대가 딛고 선 근대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놓아버린 바깥의 영역을 탐색하는 작가이다. ••• 근대는 문자와 숫자를 지배하는 시각적 감각이 쌓아 올린 빛나는 금자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읽기와 쓰기, 계산하기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촉각과 청각, 후각의 감각들이 전소정의 작업에서는 대안적인 소통과 이해의 도구로 등장한다.

-전시 리플릿 본문 중 발췌

전소정의 작품은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상기시켰다. 망각에 가까이 가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금 꺼내어 되새김질하도록 만든다. 사실은 그의 작품이 좋았는데, 너무 어려웠다. 온갖 감각들을 사용하느라 복잡했다. 어쩌면 내가 감각 사용법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읽고, 쓰고, 계산만 해 온 것일까? 그의 작품 앞에서도 난 해석하고 읽고 계산하려 들었다. 조금 더 내 감각에 기대어볼걸... 하는 후회가 짙다.




▶️ 제3 전시실 - 이강승 👥

예언 : 실제 선인장을 전시한 줄리 톨렌티노의 <흙 속의 아카이브>이다. 선인장 ‘하비’는 게이 인권 운동가였던 하비 밀크의 것으로, 하비가 죽자 그의 친구들에게 줄기를 잘라 나누어주었다. 하비와 하비의 사회적 메시지는 선인장과 흙 속에 아카이빙 된 셈이다. 친구들은 선인장을 기르며 하비를 빈번히 떠올렸을 테니까. 이강승 작가 또한 퀴어와 돌봄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그의 작품 곳곳에서 선인장 ‘하비’를 만날 수 있다.

선인장을 돌보는 일.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는 일. 결국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인데 과연 돌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최근에 친구를 입양해 가족이 된 사례를 읽었는데 가족이라는 것, 돌봄이라는 것을 기존에 제시된 개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대와 확신으로 연결된 협업 프로젝트가 아닐까. 삶이 거대한 팀플처럼 느껴진다.



무제(이름들)
무제(테이블)

성하 : 이강승은 돌봄에 대하여 생각했다. 돌보아줄 인류가 점점 부족한 때라는 걸 알지만,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20대 초반인 나에게 생뚱맞기도 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강승은 거대한 돌봄의 범위 안에서 특히 역사 속 퀴어들의 돌봄에 대해 주목했다.

이 작품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돌봄을 챙겼던, 자신들의 돌봄을 요구하던 동성애자 오준수(오창호)의 생전 기록물을 아카이빙 한 작품이다. 나는 작품 앞에서 돌봄이라는 단어를 이해와 연결로 확장한다. HIV/AIDS라는 끔찍한 병이 처음으로 한국땅에 발생한 시기, 세상이 그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던 그 시기에, 그들은 그들만의 공동체 속에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돌봄을 이루어냈다. 이강승은 그의 기록물을 남겨 돌봄의 역사를 새로 기록해 낸다. 미술과 예술의 일부로 편입시켜 다시 한번 기록한다. 나는 눈앞에서 찬란한 돌봄의 연속을 목격한다.




▶️제4 전시실 - 권병준 🤖

예언 : 포스트 아포칼립스.
4 전시실에 들어오자마자 떠오른 단어다. 기묘하고 낯선 감각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속을 휘젓는다. 전시실은 나를 별세계로 뚝 떨어뜨리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단절시킨다. 헤드폰에서는 낯선 음들의 나열만이 들릴 뿐이다. 속절없이 이방인이 되는 순간이다. 이방인들 은 서로를 연대의 아고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별별 기준과 한계를 넘어 만날 수 있을까. 결국 답은 돌고 돌아 다시 또 사랑이다.


제4전시실 전경

성하 :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과 로봇은 대립구도를 이루어야 할까, 화합의 손을 내밀어야 할까?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로봇을 통해서, 또 그런 로봇들과 함께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로봇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냈으면서도 인간이 신뢰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로봇이다. 무인화 시대의 산물로 등장한 키오스크나 AI챗봇 같은 것들만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온다. 무표정한 로봇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인간 간의 연대와 확장 가능성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확장 가능성도 아직.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전혀 모르겠기도 하다.







총평 💡

예언 : 항상 국현 전시는 큰 마음먹고 보게 된다.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웠지만 4명의 작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붙잡으며 보다 보니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네 작가의 전시를 본다기보다 네 개의 시선을 읽은 것 같다. 서로 ‘동시다발적인 평행우주’를 만든다는 말이 와닿는다.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결국 나와 너의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미술의 거침없는 확장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성하 : 역시 ‘올해의 작가들’ 다웠다. 동시대적인 주제와 그를 뛰어넘는 신선함의 인상이 묵직하게 놀랍다. 네 명의 작가들이 서로 닮은 듯, 세부적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 그들이 펼치는 예술의 참신성을 입증했다.

이제 예술이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또 철학의 확장적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은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예술이 건네는 이런 ‘제시’와 ‘제안’들이 확실한 하나의 해결책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이런 이야기들을 대중과 세상에게 끊임없이 건네어 새로운 발견과 시도, 대안을 끌어낼 수 있는 물꼬를 터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예술이 인류사에 일구어 낼 수 있는 큰 기능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여러 물음을 만날 수 있어서 감격스럽다. 예술을 통해 내세우는 철학적이고 인류학적 질문은 그 앞에서 몇 번이고 울게 한다. 메말라가는 사회라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이 사회에 물을 부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을 기억하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원대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3. 10. 20. - 2024. 0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