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 <바위가 되는 법>은 1990년대 초부터 2010년 중반까지의 작품으로 구성된 대규모 서베이 전시로, 초기 회화, 해외 소장품 등 그동안 국내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70여 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범의 작업은 모든 물질이 생명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물활론적 사유, 보이는 것과 그 실체의 간극을 인지하는 행위, 세상의 고정관 념을 뒤흔드는 가정적 전개를 통해 완성된다. 작가는 지나칠 정도로 정적이고 금욕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며 “당신이 보는 것은 보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자기 성찰적 명령을 내린다. 이는 우리가 아는 것, 보는 것, 믿는 것에 대한 의심을 촉구하고, 모든 관습적 사고를 몰아내며 새롭고 다르게 ‘보는 법’을 일깨운다. 👀
- 전시 서문 일부 발췌 -
예언의 감상 🪨

Find this cave.
Come closer trying to look in.
Gather your hands near your mouth. Shout, "Are you in there?“
캔버스 위에는 응당 있어야 할 ‘그림’이 사라진 채 오로지 글만이 채워져 있다. 이렇게 된다면 문학과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이 작품을 보며 우리가 동시에 ”Are you in there? “라고 외치는 순간 캔버스의 작은 구멍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이 되었고, 캔버스 뒤쪽에는 동굴을 헤매는 잃어버린 양이 창조되었다. 김범의 언어와 관람객의 상상력이 만나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 냈으니 넉넉히 예술이 된다. 이렇듯 김범은 가뿐한 언어와 재치로 캔버스에 예술을 불어넣는다.


관람자의 상상력이 빛을 발해야 하는 순간 ! 🤔💭

그러니까, 왼쪽부터
다리미 / 라디오 / 주전자 가 아니라
주전자 / 다리미 / 라디오 란 말. 🔄
김범 특유의 ‘세상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가정적 전개’가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보이는대로 보지 않는 것이 제대로 보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천하기엔 너무나 어렵지만.

보자마자 “어머 좋다”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성하가
“어떤 부분이?“라고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순간에는 왜 좋은지에 대해 언어로 구사할 수가 없어서 바보같이 얼버무렸다. 결을 통해 당시의 나를 적극적으로 소명하자면 ...
제목이 자화상이다. 그러니까 저 캔버스는 작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체성이 담긴 것이다. 자화상에 으레 기대하는 사람의 얼굴은 없고 캔버스를 위아래로 자른 후 겹친 주머니만 존재한다. 결국 자신의 자화상, 그러니까 오직 나만 아는 나의 모습은 주머니에 꽁꽁 넣어 타인에게 전시하지 않고 영원한 비밀로 부치겠다는 듯해서 애틋하다.
이때 떠오르는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말.
”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궁핍하게 만든다.“
…🤫…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뭇가지 위에 올려진 돌은 자신이 새라고 배운다. 배운다기보다 ‘너는 돌이 아니고 새야’라는 식으로 정체성을 강요받는다. 돌에게 새가 볼 수 있는 색이 어떤 것인지 나열하면서 너 또한 이러한 색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행위이지만 심상치가 않다. 돌에게 정시용의 시를 가르치거나 바다에 속하는 운명을 타고난 배에게 바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등 그의 물활론적 사고는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고 예술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성하의 감상 🪨

Think of smoking train 33 times.
Runaway Train.
라이터는 티켓이 되고, 서른세 번의 스모크를 뿜어내면, 우리는 안전하게 도주한 것이다. 🚂
그 smoke는 담배 연기가 될까 기차의 증기가 될까. 도주에 완벽히 성공했을 때가 되어서야 밀려오는 안도감.
Don’t look back !
영화처럼 장면이 그려졌다. 김범이 처음부터 제시한
새롭고 다르게 ‘보는 법’이다. 👀

옛 시절의 뚱티비(?) 📺 하나가 있길래 얼른 헤드폰을 써본다. 여러 뉴스의 음절을 짜깁기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영상의 본문은 이렇다.
세상엔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여러 가지 일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대해 말하거나 들을 때마다 반드시 놀란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그러다 보면 식사시간도 되고, 잠잘 시간도 되고 그래서 한참 자고 나면 이미 다음날이 되어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이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과학계에 발표된 최근 논문에 따르면 잠을 충분히 자고 식사를 거르지 않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비가와도 젖지 않고 눈이 와도 춥지 않고 돈이 떨어지지 않고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고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에 보면 머리가 헝클어져 있지만 빗으로 머리를 잘 빗으면 다시 단정한 머리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어제까지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었는지 잘 기억해보면서 머리를 빗으면 어제 아침과 거의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당연스러운 말을 하는 본문 덕에 예언과 나는 웃었지만, 편집된 뉴스에 초점을 맞춰보면 꽤 진지해진다.
사건은 여러 단상을 가진다.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것들은 뉴스와 언론을 통해 여러 관점으로 편집되고 전달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개인들 안에서는 또 새로운 편집의 과정이 탄생한다. 서로의 우주 속에서 사건은 입체적으로 전개되고 유통되고야 마는 것이며 그것이 비로소 사건의 모양새를 이룬다. 🗞️

👨🏻🎨
한 사람이 등장해서 “노란 비명”을 그리는 수업을 진행한다. 마치 ‘밥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구도다.
강사는 소리를 지르면서 캔버스에 노란색을 칠한다. 내지르는 소리마다 장단과 강약이 있었다.
처음에는 작품을 잘 감상해 보겠다고 당당히 첫째줄에 가서 앉았는데,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너무 웃겨버려서 도망치듯 맨 뒷줄에 서있는 예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웃음을 참는 분위기라 이를 깍 깨물었다. 🙊그 순간 함께 감상하던 어느 한 분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냅다 웃어버렸다. 그 웃음에 다른 관객들도 이때다 싶어 와르르 웃었다.
아쉽지만 이 작품 앞에서는 웃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그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그것도 전시장에서 소리 내어 웃는 일은 자주 벌어지지 않으니깐 말이다. 귀하다. !

어렸을 적에 한 번쯤은 이런 상상해보지 않나요? !
나는 보자마자 이 친숙하고도 귀여운 발상에 흥분해서 막 사진을 찍었으나 옆에 있던 예언은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며(말도 안됨🫢) 그런 생각을 한 나와 범이 신기하다고 했다.
김범 작가의 작품은 은근 아이 같은 면모가 있어서 관람이 무척이나 즐겁다. 이런 설계도를 구체적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 더욱 좋았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남학생 같다. Why 만화책을 매일 읽는데, 너무 빨리 읽어버린 나머지 한 달 동안 도서관의 모든 Why 시리즈를 섭렵하던 그 시절의 짝꿍이 생각났다. 그도 작가와 비슷하게, 멋진 미확인 비행물체를 상상하며 노트에 그리곤 했었다.
👽🛸 … !!
총평👩💻
예언 : 작년 서울 시립 북서울 미술관 <2022 유휴공간 프로젝트 오, 수줍음>에서 김범 작가의 <노크>, <사과> 등 신선한 작품을 접한 이후, 리움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반가웠다. 역시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미술관 현장 스텝들의 과도한 지적과 개입이 전시 관람을 방해할 만큼 신경이 쓰여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의 지인 또한 이번 전시를 관람했는데, 스텝이 ‘그림에 손가락질하지 말라’며 지적을 했다고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강압적이고 과한 지시는 관람객의 피로도를 높이고 이는 전시의 총체적 경험 중 오점이 된다. 미술관 안전과 관람객의 경험을 해치지 않는 것. 그 사이의 균형을 필히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하 : 관람을 하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다. !! 수많은 가정적(assumed) 전개를 통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이 나에게 꼭 맞았다. 전시 관람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김범 : 바위가 되는 법
2023. 07. 27 - 12. 03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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