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카이브 🗂️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

변성하 2024. 2. 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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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나 작가와 Sasa[44] 작가의 2인전으로, 지난 20여 년간 따로 또 함께 선보인 전시와 기록을 이력서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전시이다. 전시는 ‘전시 이력’과 ‘참고문헌’으로 나뉘며, 각각 작품과 자료 아카이빙을 보여준다. 전시를 통해 두 작가가 집중한 ‘기록’의 의미와 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



예언 👩‍💻

갱생 160116-170115

2016년 1월 16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365일치 식단 정보를 빠짐없이 기록한 작품

연차 보고서

2007년 Sasa[44]가 휴대전화로 건 통화 건수,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도서 권수, 소비한 설렁(곰) 탕과 자장면 그릇 수, 교통카드 사용 횟수, 공공기관에서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린 대기인 수를 월별 집계해 그래프로 만든 작품

2004년 7월 15일에서 9월 25일까지 호주 IMA스튜디오1에서 Sasa[44]가 마신 음료수들

말 그대로 마신 음료수의 수를 표에 기록하고 실제 공병을 모은 작품

자전적인 소비의 기록을 집요하게 축적하여 데이터화된 개인의 초상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재현의 시각성과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금융 앱 toss 사용자라면 ‘데이터화된 개인의 초상’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를 사면 ‘카페인 뱀파이어’,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면 ‘다정다감한 인사이더’, 택시를 이용하면 ‘프로 택시 라이더’라는 등 즉각적인 ‘소비 태그’ 알람이 뜬다. 의식적인 자각 없이 매 순간 소비 패턴이 측정/분석된다. 나아가 달마다 소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나는 이것이 소비 과잉 시대의 초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Sasa[44] 작가의 초상과 toss의 초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에게는 후자가 갖지 못한 기록의 주체로서의 능동성이 포함되어 있다. toss 데이터는 축적을 통해 개인을 발가벗긴다. 개인은 정보로 환원되며 정보 그 이상의 격을 갖지 못한다.

Sasa[44] 작가의 초상에서는 투명한 일상 속에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정신이 존재한다. 그의, 그만의, 그로부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어떤 초상이든 그 안에 내밀한 내가 생생히 살아있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 페터 한트케

성하의 코멘트 📣

그래프와 기록 자체가 Sasa[44] 그 자체였다. 내린 통계 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즐겨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각각의 사람마다 고집적인 부분이 있는 것처럼, Sasa[44] 또한 사랑스러운 고집이 있었다.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빵집에서는 꼭 먹는 메뉴가 있었다. 인간에게 한번 더 귀여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정말 귀여운 구석이 있다.


박미나와 Sasa[44], 목요일 금요일, 볼레로,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

- <목요일 금요일> 💼
‘프라이탁’이 도용당한 후 만든 책의 한 구절이다.
“만약 당신이 뭔가 좋은 물건을 만들었고 성공적이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따라 할 것이라고 장담해도 좋습니다. 프라이탁 가방도 예외는 아닙니다.”

- <볼레로> 📽️
<목요일 금요일>의 철수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한 뒤, 설치 과정처럼 재편집한 영상 작업.

-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
현대 무용가 제롬 벨의 무용극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해석한 작업이다. 💃


<목요일 금요일>은 원본과 복제의 문제를 다루고,
<볼레로>와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는 원본과 재해석을 기반으로 한다. 세 작품 모 두 원본과 그에 관한 방법론적 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피처링, 매시업, 상호 협력적 공생 관계...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박미나와 Sasa[44]는 제3의 맥락을 형성하며 단순한 협업 그 이상의 가치를 갖게 한다. 나는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섣불리 답을 내려주지 않는 점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관람자는 열린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맥락을 구조화하며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피처링(featuring): 다른 음악가를 게스트로 초대하여 작업에 참여시키는 것
*매시업(mash-up): 서로 다른 곡을 조합하여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내는 것




성하 👩‍💻

박미나, 스크림 연작

전시장의 한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이 연작을 보면, 작품마다 다른 속성을 가진 스크림이 들리는 것 같다.

종종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어떤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누군가가 무척 좋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등등… 소리 지른다는 행위는 가장 솔직하고 서툰 감정표현이다. 말로 풀어내지 못해서, 또 말로 풀어보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내지르고야 마는. 그런 복합적인 카오스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 된다.

이 연작을 보고선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 지르는 행위와 멀어진지도 꽤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적당히 침묵으로 넘기는 것이 어엿한 사람의 대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되려 부럽기도 하다. 내게는 스크림같은, 2차 가공 없는 1차적인 감정 표현이 매우 어려운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몇 년간 내가 묵혀뒀던 스크림을 이제야 마주한다.
아쉬운 나의 스크림들 . . . 💥

예언의 코멘트 📣

박미나 작가는 소리 지르는 행위가 안과 밖을 연결한다고 말한다. 입은 매우 독특한 신체 부위다. 무엇인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매 순간 관통하며 나를 쪼개기도 하고 합치기도 한다. 음식이나 공기, 혹은 말이나 태도... 내 입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필시 내 안의 것들이라는 점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나를 감싼 공기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강렬한 무언가가 내 입에서 나오게 될까? 성하의 말처럼 정제되지 않고 거친 무언가가 팍 터지며 시작되는 순수의 탄생을 기대한다.



박미나, 인물 연작

거뭇한 마음이 비처럼 고였다가 줄줄 흐른다. 신을 찾게 되는 때는 이런 때다. 정확히 묘사할 순 없지만, 눈을 떠보니 암흑뿐인 순간이 아주 가끔 찾아온다. 그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은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어 우는 것, 어둠이 가실 때까지 옆에 두는 것, 또 그냥 그런 나를 받아내는 것이다.

그런 인물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Sasa[44] , 『헤비메탈 (뉴스) 어라운드 더 월드』

『헤비메탈 (뉴스) 어라운드 더 월드』는 ‘코리아 헤비메탈 클럽’에서 무가지의 형식으로 발행한 음악 소식지 30권을 책으로 묶은 작업이다.

얼마나 큰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이런 수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오타쿠 おたく 라 칭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회에는 오타쿠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연하다. 그들은 항상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과연 본인들은 이들만큼이나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열정을 감히 혐오해도 되는가에 관하여도 충분히 사고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그들은 누구보다 멋지고 귀엽다. 헤비메탈 뉴스를 수집했던 Sasa[44] 또한.







총평 🤔


예언 : 다소 어려운 전시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꾸만 얼른 정답을 알려 달라고 떼쓰고 싶었다. 정답 골라내기가 애초에 틀린 태도인데도 어려운 전시를 마 주할 때면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처럼 오지선다형 정답 골라내는 마음가짐으로 회귀한다. 이번 전시는 정말 백지 같았고 그래서 나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했다.
더욱 자유로운 관람자가 되어야 할 텐데...

성하 : 이력서의 형식을 갖추고 전시 이력과 참고문헌으로 나누어 진행한 전시라는 점이 신선했다. 그러나 ‘이력서’라는 형식과 전시 내용의 연결성이 살짝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력서’라는 특별한 양식을 두고도 그 느낌이 충분히 다가오지 않아서 어려웠고 아쉬웠다.
또 전시장이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감상했을 때는 관람객이 많지 않았지만, 만약 많은 사람이 밀집했을 시에 병목현상이 우려된다. 조금 더 널찍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
2023. 12. 21. – 2024. 03. 31.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