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박미나와 Sasa[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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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나 작가와 Sasa[44] 작가의 2인전으로, 지난 20여 년간 따로 또 함께 선보인 전시와 기록을 이력서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전시이다. 전시는 ‘전시 이력’과 ‘참고문헌’으로 나뉘며, 각각 작품과 자료 아카이빙을 보여준다. 전시를 통해 두 작가가 집중한 ‘기록’의 의미와 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
예언 👩💻

2016년 1월 16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365일치 식단 정보를 빠짐없이 기록한 작품

2007년 Sasa[44]가 휴대전화로 건 통화 건수,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도서 권수, 소비한 설렁(곰) 탕과 자장면 그릇 수, 교통카드 사용 횟수, 공공기관에서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린 대기인 수를 월별 집계해 그래프로 만든 작품

말 그대로 마신 음료수의 수를 표에 기록하고 실제 공병을 모은 작품
자전적인 소비의 기록을 집요하게 축적하여 데이터화된 개인의 초상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재현의 시각성과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금융 앱 toss 사용자라면 ‘데이터화된 개인의 초상’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를 사면 ‘카페인 뱀파이어’,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면 ‘다정다감한 인사이더’, 택시를 이용하면 ‘프로 택시 라이더’라는 등 즉각적인 ‘소비 태그’ 알람이 뜬다. 의식적인 자각 없이 매 순간 소비 패턴이 측정/분석된다. 나아가 달마다 소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나는 이것이 소비 과잉 시대의 초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Sasa[44] 작가의 초상과 toss의 초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에게는 후자가 갖지 못한 기록의 주체로서의 능동성이 포함되어 있다. toss 데이터는 축적을 통해 개인을 발가벗긴다. 개인은 정보로 환원되며 정보 그 이상의 격을 갖지 못한다.
Sasa[44] 작가의 초상에서는 투명한 일상 속에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정신이 존재한다. 그의, 그만의, 그로부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어떤 초상이든 그 안에 내밀한 내가 생생히 살아있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 페터 한트케
성하의 코멘트 📣
그래프와 기록 자체가 Sasa[44] 그 자체였다. 내린 통계 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즐겨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각각의 사람마다 고집적인 부분이 있는 것처럼, Sasa[44] 또한 사랑스러운 고집이 있었다.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빵집에서는 꼭 먹는 메뉴가 있었다. 인간에게 한번 더 귀여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정말 귀여운 구석이 있다.

- <목요일 금요일> 💼
‘프라이탁’이 도용당한 후 만든 책의 한 구절이다.
“만약 당신이 뭔가 좋은 물건을 만들었고 성공적이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따라 할 것이라고 장담해도 좋습니다. 프라이탁 가방도 예외는 아닙니다.”
- <볼레로> 📽️
<목요일 금요일>의 철수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한 뒤, 설치 과정처럼 재편집한 영상 작업.
-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
현대 무용가 제롬 벨의 무용극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해석한 작업이다. 💃
<목요일 금요일>은 원본과 복제의 문제를 다루고,
<볼레로>와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는 원본과 재해석을 기반으로 한다. 세 작품 모 두 원본과 그에 관한 방법론적 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피처링, 매시업, 상호 협력적 공생 관계...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박미나와 Sasa[44]는 제3의 맥락을 형성하며 단순한 협업 그 이상의 가치를 갖게 한다. 나는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섣불리 답을 내려주지 않는 점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관람자는 열린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맥락을 구조화하며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피처링(featuring): 다른 음악가를 게스트로 초대하여 작업에 참여시키는 것
*매시업(mash-up): 서로 다른 곡을 조합하여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내는 것
성하 👩💻

전시장의 한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이 연작을 보면, 작품마다 다른 속성을 가진 스크림이 들리는 것 같다.
종종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어떤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누군가가 무척 좋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등등… 소리 지른다는 행위는 가장 솔직하고 서툰 감정표현이다. 말로 풀어내지 못해서, 또 말로 풀어보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내지르고야 마는. 그런 복합적인 카오스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 된다.
이 연작을 보고선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 지르는 행위와 멀어진지도 꽤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적당히 침묵으로 넘기는 것이 어엿한 사람의 대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되려 부럽기도 하다. 내게는 스크림같은, 2차 가공 없는 1차적인 감정 표현이 매우 어려운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몇 년간 내가 묵혀뒀던 스크림을 이제야 마주한다.
아쉬운 나의 스크림들 . . . 💥
예언의 코멘트 📣
박미나 작가는 소리 지르는 행위가 안과 밖을 연결한다고 말한다. 입은 매우 독특한 신체 부위다. 무엇인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매 순간 관통하며 나를 쪼개기도 하고 합치기도 한다. 음식이나 공기, 혹은 말이나 태도... 내 입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필시 내 안의 것들이라는 점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나를 감싼 공기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강렬한 무언가가 내 입에서 나오게 될까? 성하의 말처럼 정제되지 않고 거친 무언가가 팍 터지며 시작되는 순수의 탄생을 기대한다.

거뭇한 마음이 비처럼 고였다가 줄줄 흐른다. 신을 찾게 되는 때는 이런 때다. 정확히 묘사할 순 없지만, 눈을 떠보니 암흑뿐인 순간이 아주 가끔 찾아온다. 그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은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어 우는 것, 어둠이 가실 때까지 옆에 두는 것, 또 그냥 그런 나를 받아내는 것이다.
그런 인물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헤비메탈 (뉴스) 어라운드 더 월드』는 ‘코리아 헤비메탈 클럽’에서 무가지의 형식으로 발행한 음악 소식지 30권을 책으로 묶은 작업이다.
얼마나 큰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이런 수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오타쿠 おたく 라 칭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회에는 오타쿠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연하다. 그들은 항상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과연 본인들은 이들만큼이나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열정을 감히 혐오해도 되는가에 관하여도 충분히 사고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그들은 누구보다 멋지고 귀엽다. 헤비메탈 뉴스를 수집했던 Sasa[44] 또한.
총평 🤔
예언 : 다소 어려운 전시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꾸만 얼른 정답을 알려 달라고 떼쓰고 싶었다. 정답 골라내기가 애초에 틀린 태도인데도 어려운 전시를 마 주할 때면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처럼 오지선다형 정답 골라내는 마음가짐으로 회귀한다. 이번 전시는 정말 백지 같았고 그래서 나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했다.
더욱 자유로운 관람자가 되어야 할 텐데...
성하 : 이력서의 형식을 갖추고 전시 이력과 참고문헌으로 나누어 진행한 전시라는 점이 신선했다. 그러나 ‘이력서’라는 형식과 전시 내용의 연결성이 살짝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력서’라는 특별한 양식을 두고도 그 느낌이 충분히 다가오지 않아서 어려웠고 아쉬웠다.
또 전시장이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감상했을 때는 관람객이 많지 않았지만, 만약 많은 사람이 밀집했을 시에 병목현상이 우려된다. 조금 더 널찍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
2023. 12. 21. – 2024. 03. 31.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