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AGO
브로드웨이의 시카고 오리지널 팀이 25주년을 맞아
내한했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의 내한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코로나 시기를 이겨내고 다시 돌아온 오리지널 팀의 무대를 놓치지 말자!
시놉시스 ✍️
“제가 죽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범죄자는 아니라구요!”
내연남을 총으로 쏜 록시 하트는 재판을 기다리며 쿡 카운티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보드빌 스타 벨마를 만나고, 이곳에서 유명해지기 위해선 신문에 이름이 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 배신과 욕망, 탐욕이 가득한 그들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출 point 🔻
1. 자막 💬
조금 더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자연스러운 번역과 자막의 폰트, 세부 디자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자연스러운 번역에 대해 언급하자면, 죄수들의 괴팍한 말투를 잘 살렸다. 벨마의 ‘왔냐 애송 이들아’라던가 록시의 ‘신문에 이거 나예요. 나 나 나 나’ 같은 것들이다. 록시의 대사 같은 경우는 ‘이거 저예요. 저’라고도 번역될 수 있었다. 그러나 번역가는 록시의 방정스러운 성격과 관객들의 재미를 모두 고려해서 ‘저’를 ‘나’로 바꾸고 ‘나’를 네 번이나 반복해서 썼다. 여기서 이 기획사가 얼마나 번역에 진심인지, 얼마나 관객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감동했다.
타국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은 번역가의 정성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다. 최대한 비슷한 뉘앙스의 언어를 찾고, 그 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한 대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시카고 내한의 자막은 그 모든 것을 녹여냈다. 빠르게 읽고 이해하려고 할 노력이 필요 없이, 물 흐르듯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자막의 폰트와 세부 디자인이다.
1막의 Cell Block Tango에서는 6명의 수감자가 등장한다. 팝 식스 스퀴시 어어 시세로 립시츠 ! 를 외치며 자신들의 수감 이유를 말하는 넘버이다. 6명이 동시에 부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사를 부르는데 그 타이밍이 겹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럴 때가 자막을 볼 때 가장 난감한 순간이다. 이게 누구의 대사인지 몰라서 혼미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체념하게 되면 그 넘버는 자막을 포기하고 무대만 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시카고는 달랐다. 6명 각각 다르게 자막 폰트를 정해서 관객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서로 다른 글씨체로 그들 을나타냈다.
팝 식스 스퀴시 어어 시세로 립시츠 ❗️
같은 느낌이다. 또 세부디자인도 좋았다. 변호사 빌리 플린이 부르는 넘버 ‘All I Care About’에서는 빌리가 ‘Boo boo boo’하며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옆에 뜬 자막은
‘부 부 부 부 ♡ ♥︎ ’
였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다 웃고 말았다. 배우가 그냥 부르기만 했으면 잠자코 지켜봤을 장면이었지만, 그 자막 하나로 관객을 웃음 짓게 했고 유쾌한 넘버로 이끌었다. 또 에이모스가 부르는 Mister Cellophane에서는 에이 모스의 대사를 정말 셀로판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연출했다.

약간 이런 느낌이다.
이렇듯 자막이 관람에 큰 영향을 줬다. 나는 오리지널 내한 공연을 두 번 봤는데, 한 번은 ‘캣츠’를 관람했고 다른 한 번은 ‘노트르담 드 파리’였다. 내한 공연을 볼 때면 항상 자막 읽기를 포기했었다. 무대와 자막을 동시에 보는 게 나에겐 종종 버거웠으며, 번역된 말투는 머리에서 ‘입력 -> 이해’까지의 버퍼링 현상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카고 내한의 자막은 달랐다. 지난 내한 때부터 자막 디테일의 언급이 많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관객의 이해를 쉽게 돕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한국어판을 보는 것 같았기에 만족을 넘어섰고, 다른 기획사들도 내한공연을 준비할 때는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 밴드와 마에스트로 🥁
‘뮤지컬 시카고’ 하면 밴드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밴드가 무대의 배경이 되는 것은 거의 시카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당연하듯 보고 있었는데,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다.
보통의 다른 뮤지컬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에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으로 뮤지컬을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카고는 그들의 존재를 훤히 드러낸다. 신기하게도 그것이 주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극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고와 몇 번 정도 그들의 이야기에 출연을 하는 마에스트로는, 밴드나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그저 좋았다.
생각해 보면 뮤지컬은 음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장르인데, 우리는 항상 음악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했다. 물론 무대 연출이나 음향적인 부분의 여러 문제 때문에 무대 밑으로 정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있는 밴드의 모습은 좋아 보인다.
예언의 감상평 💃
작년 이맘때쯤 영화 시카고를 가볍게 본 후 약 일 년이 지났는데, 오늘 뮤지컬을 보는데 대사의 맥락이나 넘버가 귀에 익숙하게 들렸다. 그만큼 시카고는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굉장히 임팩트가 강한 작품이다.
라이브와 현존성을 제대로 느껴서 일차적으로는 즐거웠고, 나아가서는 작품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미할 수 있었다.
주인공 록시 하트는 철없고 뻔뻔하고 천박한 여성이다. 극 사이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은 천박한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아 정말 천박한 여성이구나.’라고 느꼈다.
록시가 개인적인 천박성에서 확장된 캐릭터가 된 시점은 마지막이었다. 극의 마지막에서 결국 록시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는 록시 하트가 자신의 인생에서 큰 대중의 인기를 받을 거라 상상한 순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제2의 록시 하트의 등장으로 기쁨의 순간, 법정에는 록시와 그의 변호사 빌리 플린만 존재한다. 밀물처럼 빠진 인기에 록시는 큰 좌절을 느낀다. 이때 플린은 이렇게 말한다.
“여긴 시카고잖아.”
이 대사 하나로, 록시의 인간적인 특성, 천박함이나 뻔뻔함, 인기에 대한 목마름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시카고의 일, 나아가 재즈 시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가진 보편성으로 확장 및 귀결됨을 느꼈다. 그 순간 루시는 천박한 여성이 아니라 공허한 여성으로 탈바꿈된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막대한 반사 이익을 얻었고, 이를 통해 유례없는 부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세대는 로스트 제너레이션 Lost Generation이라 불린다. 잃어버린 세대. 이들은 부를 얻고 동시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갑작스러운 부와 함께 이들은 걷잡을 수 없는 공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치와 파티, 술과 재즈와 깊은 공허감.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시대로, 불 보듯 뻔한 몰락의 길이 보이기에 돌이킬수록 찬란하고도 매혹적인 시대이다.
록시 하트는 재즈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껍데기만 남은 사람.
그리고 재즈 시대 몰락의 아이콘이 있다. 벨마 켈리.
그녀는 극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록시 하트에 의해 몰락을 맞이한다. 그녀의 변호사, 그녀가 하려는 변론, 법정에서 신으려는 버클 달린 은색 구두까지 모두 록시에게 빼앗긴다. 록시의 미래를 벨마가 암시한다면, 결국 둘은 동일한 대상일 테고, 그렇다면 록시에 의해 록시가 몰락한다는 것이다. 재즈 시대가 재즈 시대의 반짝거림과 퇴폐로 막을 내리는 것과 같이.
그러나 극에서는 현실과는 다르게,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가 극적인 화해를 이루고 합동 무대를 선다. 둘 모두 버클 달린 은색 구두를 신고. 명랑하게. 이는 현실에서 할 수 없던 봉합을 극에서 이룬 것으로, 나는 이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시대에 대한 위로라고 느꼈다.
성하의 감상평 💃
시카고에 파워풀한 안무는 없다. 매우 섬세하게 동작을 이어나가고 딱히 동작도 크지 않은 편이다. 음악도 락이라던가 보통의 뮤지컬 음악 장르가 아닌 ‘재즈’이다. 이렇게나 절제된 춤과 끈적한 음악이 관객들을 이토록 환호하게 한다. 무대에서 ‘빡!!’ 하고 터트려주지 않는 것을 관객들이 환호성과 박수로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껏 환호했다. 화려한 무대 전환, 의상 전환 없이 오로지 배우들과 밴드만으로 만든 원초적인 뮤지컬을 본 것 같았다.
이것만으로 시카고는 유일무이하다. !
WE’RE HOTTER THAN EVER !

CHICAGO
2023. 05. 27. ~ 08. 06.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