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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예언미 2023. 4. 12. 13:59

© National Museum of Korea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을 개최했다.

해가 지지 않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한 합스부르크家 중세 신성로마제국 통치의 시작부터 제1차 세계대전 중 군주제의 붕괴까지 유럽 세계사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 합스부르크 가문의 컬렉터를 관람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전시.

 

 

 

 

 

👀 관람 포인트 1) 초상화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왕족의 많은 초상을 볼 수 있다. 초상화는, 한 폭의 그림 안에 군주와 왕비의 위대함과 통치의 정당성을 모두 담아야 하는 화가의 많은 수고로부터 탄생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자신들의 고귀한 핏줄을 더렵혀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근친결혼을 고집했고, 이로 인한 유전병으로 심한 부정교합을 앓았다. 그러나 오늘날 포토샵과 같이 예쁘게 보정한 초상화 앞에서 우리는 귀족의 아름다움만 볼 뿐이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다섯 살 초상화에 이러한 보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 공주의 부정교합은 음식을 씹기 어려울 정도로 심했으나, 화가 벨라스케스는 이런 부분을 가리고 공주의 아름다움만이 돋보이도록 왜곡해서 그렸다. 이러한 초상화에 숨겨진 비화들을 상상하면서 관람하는 것이 포인트.

 

 

 

 

 

👀 관람 포인트 2) 다양한 공예품

이번 전시에는 그림 회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려하고도 섬세한 공예품은 이곳에서 전시를 보고 있는 관람자를 오스트리아 역사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회화와 함께 공예품이 함께 모여 있으니 합스부르크의 역사가 배로 실감 난다. 누금 장식 바구니부터 야자열매 주전자까지 다양한 공예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십자가 모양 해시계. 필자는 해시계의 소박한 크기를 보고 놀랐다. 분명 공부할 때는 크다고 생각했는데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의 해시계였다.바로 이것이 원본이 주는 반전과 매력이 아닐까.

 

 

 

 

👀 관람 포인트 3) 고종의 갑옷

전시 마지막 챕터에는, 1894년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대한 선물로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보낸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전시되어 있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묘한 생각이 든다. 일종의 세계관 충돌이랄까. 대한민국 공교육을 착실히 밟은 사람이라면 아관파천부터 광무개혁, 그리고 비운의 좌절까지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고종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멀고도 먼 유럽의 연결고리. 그것도 100년도 넘은 오래전에. 이 둘이 자아내는 거대한 충격을 느낀다.

또한 전시의 첫 페이지에서 본 합스부르크 가문의 단단하고 차가운 은빛 갑옷과 비교해서 보면 더욱.

 

 

 

 

성하 pick

<폭포가 있는 풍경>

큰 크기를 자랑하는 작품들 속에 흔치않았던 아담한 작품이다. 신화, 종교, 초상화들 속에서 풍경화를 만나니 괜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풍경화 속의 높다란 침엽수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애정이 깃들었던 것 같다. 전시장의 바쁘고 복잡한 인파 속, 이상하게도 마음을 놓이게 한 작품.

 

 

 

<브뤼헐 가문과 꽃 정물화>

꽃 정물화는 17세기 플랑드르에서 독립적인 장르로 발달했다. 하나의 꽃병에 각기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을 모아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꽃다발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간의 흐름, 시간의 응축, 소멸과 유한을 한꺼번에 던져준다. 너무 많은 키워드를 상기시켜서 끝내 정리하지 못하고 전시관을 나왔다.

이 상태도 좋은 듯싶다.

 

 

 

 

예언 pick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내가 루벤스 작품을 실제로 보다니! 전시회를 가기 전부터 거장의 그림을 본다는 것에 설렜다. 루벤스는 거대한 사이즈의 화폭을 주로 그리는데, 크기가 주는 위압감이 매혹적이다 못해 폭력적이다.

이 작품은 가벽을 설치한 후 한 공간에 따로 걸려있다. 철저한 암흑 속에서 이 거대한 작품이 은은한 핀 조명을 받으며 ‘존재하고’ 있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함께.

나는 그림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몇 분을 그렇게 앉아있어도 그림에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아우라 그 자체에 압도당했다. 오로지 그림 앞에서 단독자로 혹독히 내몰렸다. 일종의 종교적 체험이었다.

 

 

 

 

 

총평 🧐

성하) 박물관에서 기획한 전시는 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와 다르다는 것을 사뭇 체감했다. 후자는 대체로 동시대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전자는 주제가 ‘역사’로 선명했다. 그래서 사실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야기를 잘 알지도, 세계사에 빠삭하지도 못해서.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먼 역사를 향한 경의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합스부르크를 지켜내려 했던 길고 치열한 시간 동안에도 예술을 지켜냈다는 것만으로 경이로웠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고전의 향기,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프레임, 유화의 질감, 곳곳에 깔리는 그 시대의 클래식은 관객을 빈미술사박물관으로 불러들인다.

 

예언) 뉴욕에 가면 MoMA를 가고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을 간다. 미술관이 하나의 여행 랜드마크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와 유럽이 통째로 서울 용산에 착륙했는데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모든 미술관에는 원본이 걸려있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원본’ 그 자체의 느낌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느낀 감각을 언어로 변환하는데 이번 전시는 특히 한계를 느낀다. 그렇기에 하나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마무리하려 한다.

아우라(Aura)는 ‘숨’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예술 작품의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함. 혹은 일종의 종교적 체험. 후광. 카리스마 등. 발터 벤야민은 예술 작품 속의 아우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즉 아우라란,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가까이 있지만 사실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2022. 10.25. ~ 2023. 03.15.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