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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는 지난 20여 년 간 그의 예술 실천에서 주축을 이뤘던 제도권 밖의 겉보기에 작고 연약한 주변부의 문제의식과 최근 작품들의 변화한 물성에 주목하고 있다.
- 전시 서문 일부 발췌
🛒 ••
이주요 작가가 제도권 밖 작품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 선택한 도구가 카트이다. 오백 원만 넣으면 가득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마트 카트처럼 작가는 작품을 카트에 넣어 작품의 숙명을 보여준다.
구조와 작품 DP 📦
예언 : 갤러리 2층 모두가 하나의 수장고 혹은 창고 같다. 이는 이주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러브 유어 디포> 영상 크레이트 작품을 언급하려 한다.

영상에서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작품, 혹은 전시를 마치고 갈 곳이 없는 작품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동안 우리는 미술관에게 ‘선택된’ 작품만 경험했다. 그 밖의 작품 중 일부는 작가의 스튜디오 한 편에 놓여 있을 것이다. 또 일부는 누군가의 집 벽에 걸려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경우는 생산되는 작품의 양을 생각할 때 한정적이다. 특히 캔버스가 아닌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조각 작품이라면 더욱 골칫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 바로 이주요 작가의 카트이자 개방형 수장고이다.


장소를 제공받지 못한 작품은 폐기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이주요 작가는 <Of Five Carts and On>을 통해 ‘폐품처럼 다섯 개의 카트에 쌓아 옮겨지며 어렵사리 생존한 작품’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것은 비단 이주요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양혜규 작가의 <창고피스>가 떠올랐다. 작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그대로, 마치 짐짝처럼 전시장 안에 설치한 그 작품.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작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난감한 상황을 마주한다는 점은 참 서글프다.
https://www.marieclairekorea.com/culture/2022/09/haegue-yang/
이번 전시에서는 다섯 개의 카트가 백 개로 늘어났다. 또한 작가 개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같은 문제를 앓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담겨 있다.
어딘가에 널려 있거나, 한 곳에 뭉쳐있거나, 거대한 탑을 쌓거나, 바퀴 달린 카트에 담겨 있다. 그래서 전시장이 마치 이삿짐을 풀기 전의 집처럼 어수선하고,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전형적인 미술관 디스플레이와는 달라서 당황스럽지만 동료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함으로써 개인을 관통하는 위기를 고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연대와 사랑의 장소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성하 :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쇠파이프다. 뭔가 뒤죽박죽 엉켜있는 듯한 쇠파이프, 그리고 그 사이에 작품들이 하나씩 걸려있다.

이는 1924년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신(新)무대기법>전에서 키슬러가 고안해 낸 L과 T의 전시방식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정돈된 디스플레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하나의 Depot. 창고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전시는 1층과 지하 1층으로 이어진다. 2층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전시 의도를 더욱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 1층은 정말 창고였다. 겹겹이 쌓인 크레이트(crate)와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한 작품들, 동시에 크레이트 안에서 그렇게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지하는 신호조차 터지지 않았다. 철저하게 창고 다웠다. 세상으로의 연결이 불가능한 그곳은 결국 카트에 실리지 못해 창고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작품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Love your Depot ••

성하 :
How have you been?
I’ve thought about you a lot.
Let’s meet again at the Han River.
No one would see us when we are deeply embraced.
“I love you.”는 그 어디에도 없지만,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해로 읽힌다. 사랑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람 없이 넉넉하다.

성하 : 작품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작품을 둘 곳이 없어 폐기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작품에게 남길 수 있는 말 한마디라면 나 또한 ,
I’m sorry to be an artist.
자신이 애정으로 만든 작품을 폐기해야 하는 심정은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폭포 아래로 떨어뜨려야 하는 작품에는 작가의 영혼도 일부 함께 할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총평 💭
예언 : 복잡한 전시장 안에서 또 한 번 사랑을 느꼈다. 진정한 연대는 죽을 만큼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넘볼 수 없는 초월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담으로,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성하에게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전시를 추천하면 어떡해!” 전시를 보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어리광을 부리며 이번 결은 못 쓰겠다고 염불을 외웠다. 그렇지만 또 업로드 날짜가 되니 어떻게든 글을 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것이 우리의 장점이 라고 생각하면서, 또 성하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총평을 마무리한다.
성하 : 미술계의 내부를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선택받고 선택받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 항상 옮겨가며 불안을 머금은 카트, 미술품 보관 창고.
이주요는 이 모든 것을 유연하게 수용하게끔 했다. 전시 자체의 의미가 깊었다. 제도권 밖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주요: <Of Hundred Carts and On>
백 개의 카트와 그 위에
2023. 08. 31 - 10. 27
바라캇컨템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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